김성교 미국특파원
햇빛이 휘어져 내려야 한다
키 큰 아파트에 둘러싸인
키 작은 골목에서
또 반은 땅에 묻고 사는
반지하 방에는
햇빛이 살지 않는다
구름을 뚫고 하늘 바로 밑까지 오른
초고층 아파트에는
햇빛이 가득히 사는데
햇빛을 쫓으며 더 크려는
키 큰 나무 밑 그늘에는
젖은 풀꽃들이 산다
부자들은 더 높이 올라
더 많은 햇빛을 가지려 하고
가난한 이들은 더 아래
젖은 방에서 사는 것이
풀꽃 닮았다
햇빛이 휘어져 내려야 한다
더 높은 곳에 사는 부자들이 막아서거든
더 크려는 키 큰 나무들이 막아서거든
몇 번이고 휘어져서
그늘진 곳에 풀꽃까지 굽어 내려야 한다
반지하 방 젖은 곳까지 굽어 내려야 한다
(시작노트)
역사와 시대의 모순 그리고 일상의 삶 속을 오롯이 드러내어 아파야 할 현실의 목소리를 햇빛에 기대어 말한다.
수사학적 의미가 없어도 우리는 그 목소리에 마음을 보태게 만든다. “지하 방에도 빛이 휘어서라도 내려가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체 게바라가 혁명가로서 존경받는 이유가 혁명은 완성이 아니라 끝없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작가정신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창의 속에 살아나오는 서슬푸른 날 선 정신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굽어서라도 그 햇빛을 받아야 한다.
김성교 시인
월간문학 시조부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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