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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예저널=박정용 기자]





봄, 그것은?


                                     이정연



  봄이 오면 온천지에 핀 꽃들로 마음이 환해진다. 너무 한꺼번에 피는 바람에 가끔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마다 봄이 기다려진다. 몇 며칠 꿈을 꾸듯 먼저 피어난 꽃들이 흐드러지고 나면 한 걸음 뒤에서 라일락이 피어난다.

  목련처럼 우아하지도, 진달래처럼 수줍지도, 개나리처럼 너울춤을 추진 않지만, 봄바람에 향기를 싣고 와서 코끝을 간지럽히면 곧 마법에 취해 세상 근심을 다 잊고 황홀경에 빠져든다.

  게다가 지천에 널린 냉이꽃이며, 사람들의 발길 따라 그렇게도 걸음마를 해 보고파 웬종일 발걸음을 수도 없이 헤아리는 제비꽃, 하얗게 꽃무덤을 만들며 한 아름씩 피어나는 조팝꽃,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꽃이름 인 콩다대기꽃과 하교길에 나른한 기운으로 꿀을 빨아 먹던 인동꽃 등 봄의 대지는 온통 꽃으로 넘쳐난다.


  어린 시절에 뉘집 논이며 밭이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동네 언니들이랑 논두렁 밭두렁에서 새순을 만났다. 묵은 검불들을 헤집고 나와 보실보실 하고 틍통하게 제법 살이 올라 부들부들한 쑥을 뜯을 때면 그때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처럼  깊은 산골에 신선이 내려와 피리를 불 것만 같고 한적하고 깊었던 들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건 마치 오래전에 꾸었던 꿈속의 한 장면과 같았다.


  새롭게 소생하는 새싹들이나 봄나물과 꽃들은 마치 여인이 긴 고통과 아픔을 통해 새 생명을 탄생시키듯, 봄은 제 살을 터뜨리며 경이롭게 꽃을 피워낸다. 갈색 겨울의 흔적들을 조금씩 묻어가며 또다시 삶의 찬가로 연록의 물결을 이루어 낸다.

  해마다 봄이 오지만 올해의 봄을 통해 왜 봄이 여인과 흡사한지를 느낀다. 겨우네 수분을 저장한 나무가 움을 틔우려고 하늘 향해 팔을 뻗을 무렵, 나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어진 마음을 가져야 심성 고운 꽃 한 송이를 얻는다며, 집안 어른들과 주변사람들로 부터 살뜰히 태교까지 챙겨 받고 덕분에 열 달 동안 잉태한 고귀한 생명을 얻었다. 그때 아이와 첫 만남은 경이로움과 설레임이 감당하기조차 숨막힌 축복이었지만, 그 댓가였을까, 산고로 겨우 생명만 부지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 되고 심한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서 삶을 유지한다는 게 죽음보다 힘든 것 같은 길고 험한 터널속에서 오래 갇혀 살아야 하기도 했다.

  그 예쁜 아이들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근근히 연명하면서도 아이들 만은 꼭 지키고 예쁘게 자라는 걸 바라보고 싶었다. 그 처럼 나무도 꽃을 피우려면 찢어지는 고통의 길을 지나야만 하지 않았을까... 

  소중한 걸 얻는다는 건 그런 것이며, 경험을 통해서 사람은 또 거듭나게 되고 그래서 노인에게서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모든 걸 다 주는 대지가 어머니이고 그래서 봄이 여인의 계절인가 보다.

  봄에는 내기하듯 너무 많은 꽃들이 피어나 어지럽다고 반 투정을 부린 내가 부끄럽다. 그렇게 모두 아픔을 감내하고 제살을 찢어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을, 춥고 어둡고 긴 터널을 견디면서 묵묵히 지나온 풀과 나무들이 내뿜는 온기가 냉이 향으로 내 몸 안으로 가득 스며든다.

  세상에 희생없이 이루어지는 게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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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24 08: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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