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용 기자
[한국 문예저널=박정용 기자]
살구꽃
겨우내 뜨겁게 달군 것들이 일제히 터지더니
살구꽃은 잊지 않고 피었다
새들이 앉았다 간 살구나뭇가지에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은 꽃잎마다
아침이슬이 맺혔다
우리 집 뒤뜰 살구나무에 살구꽃 피거든 올해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라. 사립문 닫혔다고 오던 길 돌아가지 마라. 꽃을 밀어 낸 힘으로 살구는 열릴 것이니, 입안에 침이 고이거든 살구나무 아래로 오거라. 울타리 밖에 어둠이 내리면 그 때 살구 하나 베어 물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가슴에 별이 진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귀띔해 주어라. 살구꽃 지기 전에 용서할 일 남았다고 살구꽃을 본 사람이 가장 투명한 사람이다. 만나자는 약속 해 오는 사람 있거든, 살구나무에게 길을 물어라. 가지마다 살구꽃 환하게 피워 낼 것이니
가슴속에서 지지 않은
살구꽃은
혼자서 봄을 맞이 하고 혼자서 봄을 보낸다
피고 지는 일이 잠깐이라는 것을 아는
봄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주던 한 알의 풋살구였다
봄
마른나무에 귀를 갖다 대면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는지
모터 돌리는 소리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나뭇가지 끝 실핏줄 구석구석 까지
보일러가
뜨거운 물을 보내면
봄은
온몸이 근질거린다며
참새 혀 같은 잎들을 밀어낸다
봄의 간절한 몸부림이 비로소 봄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 저서 :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다수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윤동주문학상, 황금펜문학상, 전라북도문화예술창작지원금,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콘텐츠 창작지원금 수혜 등 다수 •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전주비전대학교운영교수 역임 • 현) 향촌문학회장, 사/미래다문화발전협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 전라매일논설 위원, 명예문학박사 | |
정성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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