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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녘의 멋


장석영

 

 

 정월 초하루, 일출을 보기 위해서 봉길해수욕장에 갔다. 어둑새벽 위로 희미하게 빛이 밝아오면서 대왕암의 모습이 드러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넓어지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함성이 쏟아진다. 바다 끝에서 신비의 생명이 솟아올랐다.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사람들이 하나둘 해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관광객이 떠난 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육지의 시작이며 바다의 시작이고, 육지의 끝이며 바다의 끝이기도 한 해변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일출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걷는 동안 세상의 아름다운 빛이 왜 저리도 멀리 떨어진 끝자리에서 솟아오르는지, 사람들은 왜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에서 발하는 외계의 색에 빠져드는지 곰곰 생각에 잠겨 가녘의 순례를 이어갔다.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에는‘뉴질랜드 카와라우강 번지점프 해보기.’가 있다. 50대 중반, 현지 여행 중에 그 꿈을 이루나 싶었는데 주위 사람의 만류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꿈 자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결국, 퇴임 후 문학동인 후배들과 청풍랜드 번지점프대에서 그 뜻을 이루었다. 번지점프를 하기 전에는, 두려움의 가장자리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장에서 그에게 주어진 최후의 5분을 옆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2분, 지나온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데 2분, 자연을 둘러보는 데 1분을 쓰기로 했다는데 나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긴장된 순간에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한 게 많았었는데 막상 점프를 마치고 나니 마음 졸였던 시간은 바로 잊히고 인생탑 위에 믿음이라는 추억 하나 더 얹어 놓은 기분이었다. 번지점프대에 섰을 때의 긴장감과 뛰어내릴 때의 스릴 그리고 안전줄에 걸리는 느낌으로부터‘아,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안도감은 번지점프 시설에 대한 안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믿음은 두려움에 망설이던 나를 긍정의 힘으로 바꾸었고 실행을 위한 단초가 되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K가 중병으로 입원했다. 발병 초기 문병을 갔을 때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항암 치료와 민간요법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 병에서 벗어나고자 노력 했다. 퇴원 이후로 몇 차례 더 만나다 보니“이제는 병과 더불어 살아야지.”하면서 그간 알지 못했던 인생 공부를 한다며 여유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선 자의 마음은 시시로 변할 수밖에. 몸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 밝은 표정을 짓다가도 조금 나빠지면 금세 심각해지기를 반복했다. 간간이 삶과 죽음의 벼랑에서 자신이 느낀 점을 토로할 때는 보기에 딱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병세는 더욱 나쁜 쪽으로 기울고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마음도 많이 약해지고 있었다. 매 순간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면서도 순간순간 모든 걸 놓으려는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봄볕이 대지를 따뜻하게 데워주던 날, 그는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이제 편안하게 갈 수 있네, 진리로부터 믿음을 얻었으니….”그의 엷은 미소는 이미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듯 대자유의 경지를 느끼게 했고 진정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연민의 정보다는 평화를 위한 기도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마음 기도를 올렸다. 인생의 서녘 하늘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물론 죽음에 관한 깊은 사색을 거쳐 순리에 적응해 가는 그의 표정은 이미 현자(賢者)의 모습이었다. 누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다. 

 ‘가장자리’는 둘레나 끝에 해당되는 부분을 말한다. 중심으로부터 비켜선 바깥 테두리를 의미하며 외곽 또는 변두리라고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끝자리와 관련지을 수 있고 삶의 가장자리, 인생의 가장자리처럼 마음자리를 표현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장자리의 현상이나 가치를 생각해서인지 그곳에 서는 것을 썩 내켜 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세간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매 순간이 만남과 이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관계의 시작과 끝이 바로 가장자리이기 때문에 무작정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끝자리에 선다는 것은 결결이 불안과 두려움이 있기는 하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꾸준히 중심자리를 지향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나를 만나고 본질에 가까이 가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인생의 가장자리로 다가가기를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열정으로 초현실적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깊은 영적 체험을 위해 고행을 결심한 수도자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세상 중심에서 오는 안정적 삶의 여유보다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겸손함을 알게 되고 지난한 삶의 항로에서 인내와 희생의 가치를 느끼며 삶의 근본을 깨우치려 한다. 이처럼 세상 끝에 살면서도 세상 중심의 일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은 수난과 고통을 이기는 방법으로 오히려 세상의 가장자리에,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실에, 진리에 조금 더 가까워졌음이리다. 인간 공동체에서도 삶의 가장자리가 튼실할 때 중심이 바로 서고 흔들림 없이 건강한 성장을 하게 됨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자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사립문이라 할 수 있겠다. 

 하늘빛이 한없이 푸르던 날, 바다는 연한 파랑과 어울려 평화의 기운이 가득하고 뱃길 도우미를 자청한 갈매기는 끼룩끼룩 저희만의 언어로 우리를 환영한다. 여객선이 여수 신기항을 출발하여 금오도 여천항까지 가는 동안,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 사이로 해가 저물고 있다. 뱃길에서 열린 오감은 어떤 의미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가끔 행복이란,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깊은 감동이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이번 나들이는 K의 49재를 의미 있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후배의 제안으로 평소 K가 좋아했던 바다 위에서 멋진 작별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바다 위에서 느낀 감정은 헤어짐이 아닌 새로운 세상과 만남을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우주 만물은 반드시 생과 멸이 있다. 그리고 생멸은 서로 멀리 있지 않다. 두 팔을 벌려 한쪽 팔에 걸리는 것은 생이고 다른 팔에 걸리는 것은 멸이 아닐까. 

 생전, 진리로부터 안전을 확인했으니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다고 말을 한 K가 바다 끝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어둠이 지나면 반드시 빛이 올 거라는 믿음은 그가 진리에 의해서 거듭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약속이었다.




<약력>


장석영 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

남양주시 거주




심사평

  

▣ 시 부문 심사관점

 

시 부문 심사는 전통적 심사 방법인 문학성과 작품성을 추구하는 관점을 넘어서, 독자 친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하였다. 응모 시들의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응모해 온 시들 중에는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런 시들이 독자들에게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번 심사에는 가독성과 재미성을 갖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이는 독자들이 시를 즐기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감동과 해석과 생각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는 심사위원의 심사 핵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응모자들의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격려하고,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시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 수필 부문 심사관점

 

수필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산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허투루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수필은 작가의 깊은 성찰과 경험이 담겨 있어야 하며, 독자의 마음에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기 자랑이나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단순 나열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칼럼이나 논단처럼 통계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수필의 본질을 담아내기 어렵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하므로, 작가의 진솔한 목소리와 섬세한 감정 표현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번 심사에서는 일상 속에서 발견한 깊은 통찰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높이 평가 했다. 

 

▣ 수필 부문 심사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올라온 여러 편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작품마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솜씨가 보여 쉽사리 당선작을 가리지 못했다. 수사 가득한 문장들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묘사나 문장의 유려함이 오히려 수필이 가진 장르적 덕목을 가리는 듯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본심에 올라 온 장석영의‘가녘의 멋’이 인상적이었다. 수필은 인생의 가장자리에서의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삶과 죽음, 두려움과 믿음, 현실과 초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작가는 일출, 번지점프, 병에 걸린 친구와의 만남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가장자리에서의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흐르는 '가장자리’라는 주제는 독자에게 삶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고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가장자리에서의 경험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그 이후의 안도감과 평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삶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문장력은 감동적이며, 병에 걸린 친구와의 만남에서 보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감정 표현은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인간 이해력을 보여주며, 경험을 통해 진실과 믿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삶의 중심에서 멀어진 곳에서도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따라서 '가녘의 멋’은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경험을 통해 삶의 깊은 의미를 탐색하는 탁월한 작품이다. 특히 섬세한 감정 표현과 철학적 고찰은 독자에게 여러 생각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얻게 한다. 대상 수상자가 없는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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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6-22 15: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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